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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민 중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직접 대화를 나누어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인터뷰에 참가해 본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이하 故라는 말이나 前이라는 말은 필요에 의해 생략할 가능성이 많을 것 같으니 양해바란다)
지금까지 몇몇 사람들에게 얘기한 적은 있지만 난 노무현 아자씨랑 우연하게도 인터뷰를 같이 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정말 예기치 않았던 경험이었다. 이런 얘기는 간간히 하긴 했었지만 노사모 열풍이 불던 대선 시절에도 그다지 포스팅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때 잘 포장해서 올렸으면 인기있는 글이 될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만, 난 그런 거에는 그닥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이 시점에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이제 어느 정도 사람들의 마음이 노무현 아자씨로부터는 조금 멀어져서 민주주의 자체로 집중되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설이 너무 긴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본론보다는 사설이 길 것 같다. 어쨌거나 대학교에 다니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노무현이라는 국회의원이 청문회 스타로 나타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름 젊은 사람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청문회 스타로 뜨고 나서도 한참 후의 일이 아닐까 싶은데 그 당시 난 전국대학전산학과연합회(NCA)라는 그 이름도 거창한 단체에 소속되어 있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연합써클 비슷한 곳이었는데, 나름 전대협(혹은 한총련)같은 류의 조직이었다. 학생회장만 회장이 될 수 있었고 운영진은 각 학교에서 차출되어 운영을 할 수 있는 그런 조직이었는데, 말이 차출이지 윗 선배들에 의해 끌려온 성격이 다분했다. 암튼 대학생활의 무료함에 헤매이던 한 마리 온순한 양이었던(???) 난 어느 선배 하나를 만나 NCA를 가입하게 되고, 처음으로 갔던 모임에서 받은 동기들의 환대에 감명받아 계속 NCA를 들락날락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2학년이 되어 비교적 한직인 학술부장을 맡게 되는데, 학술부장이란 자리가 별 거 하는 자리는 아니고 각 전산학과에서 프로그램을 수집하는 자리였다. 그니까 우리 연합회의 가장 큰 행사는 '전산학과 프로그램 전시회'였다. 요즘에는 그런 행사가 너무 많아서 별 볼일 없는 경우가 많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행사가 전무해서 기업들이 우리 전시회에 지원도 많이 해주고 그랬더랬다. 그래서 TV, 라디오에서 방송을 해주고, 신문에서도 기사를 실어갔다. (그때를 생각하면 연합회의 지금의 몰락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하긴 그것도 시대의 흐름이겠지만 말이다)
전시회 날이 다가오고 명목상 학술부장인 내가 라디오 생방의 인터뷰를 하게 됐다. 그땐 무슨 깡으로 그걸 한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난 말도 잘 못하는데 말이지. 그 전날인가 공중파 TV에서 찍어가기도 했더랬다. 내 뒷 모습을 말이다. -_- 그걸 친구가 보고 전화도 했더랬다. 너 TV 탔냐고. (뒷 모습 보고 어떻게 알아챘담. 그것도 아침 7시 무렵 방송이었는데 말이지)
암튼 인터뷰 준비를 하고 있는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전날 TV 방송을 보고 노무현 아자씨가 우리 전시회를 구경을 온 거다. 리포터 난리났다. 노무현 아자씨랑 같이 인터뷰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나한테 하는 거다. 뭐 나야 나쁠 건 없지. 그래서 결국 셋이서 인터뷰를 했다. 사실 무슨 인터뷰를 했는 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마도 노무현 아자씨 위주로 인터뷰가 흘러갔던 것 같다. 어떻게 이런 행사를 알게 됐냐 등등.. 나한테도 몇 가지 물어봤는데, 나름 잘 대답했던 것 같다. 나중에 생각 외로 잘했다고 했으니까. 뭐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긴 한데 그거까지 얘기하면 너무 사족인 거 같아서 생략.
당시 우리 대학생들은 주류 국회의원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다. 백기완 선생 같은 아웃사이더 이미지의 열사 이미지에 열광했지 주류로 편입되어 열심히 노력하는 노무현 아자씨 같은 인물에게는 '고고한' 대학생들은 특별히 마음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나 역시 그렇다고 보기에는 좀 그렇고. 난 정치라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는 않았다. 다만 한나라당 (이전에는 민정당 & ...) 이 싫었을 뿐.
그때 사인이라도 받아놓을 걸 그랬다. 이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뜰 줄 알았더라면 말이다. 당시 선배가 나 인터뷰 나온다고 라디오 녹음을 해준 게 있었는데 그게 집 어딘가에 남아 있는지 아님 이사를 하면서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있으면 엠피삼으로 저장해놓고 싶은데.. 방 귀퉁이 상자에 과연 그 테잎이 있을지 모르겠다. 워낙 오래전에 받아놓은 테잎이라.
당시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난 어쨌거나 노무현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어딘가 모를 좋은 선입견을 가지게 됐다.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어찌보면 별볼 일 없는 행사에 TV방송을 보고 선뜻 찾아오는 모습은 우리 정치 지도자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닌 것 같다. 그가 집권하던 시절에 좋은 방향으로 갔는지 나쁜 방향으로 갔는지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은 되지 않지만 그는 늘 공부하고, 치열하게 고민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의 결정이 옳지는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맹렬하게 국가를 위해 고민하던 사람도 흔치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부디 생전에 국가 지도자로서 그런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덧붙임) 좀 전에 '고고한' 대학생들이란 말을 썼는데,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전반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젊은이들 중에도 처절하게 시대에 대해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있는 거 잘 안다. 사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변화의 물결이 밀려왔다. 난 학교 들어가면 데모만 하고 다닐 거라 생각했지만 우리 때부터 그런 시절은 끝나가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부터 반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의 우선순위는 과연 무엇일까. 우선순위가 바뀐 것은 아마도 IMF라는 시점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 자체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사실 비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의 우선순위는 '취직'이 아닐까 싶다.
취직, 물론 좋다. 취직해야 먹고 살 수 있으니까. 결혼도 하고 2세도 만들 수 있고, 말 그대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취직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인성' - 전인교육이란 말 다들 들어봤을 게다. 인성이 결여됐다고 판단되는 사람이 취직을 해서 일을 해나가는 모습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에 난 이 덕목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것 같다. 지식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식이란 것은 서로 힘을 합쳐서 품앗이하면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인성은 그런 것이 아니다. 공부를 하기 전에 왜 공부를 하는지부터 깨우쳤으면 좋겠다. 그리고 올바른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뭐, 부족한 사람이 이런 말 하려니 좀 쑥스럽긴 하다. 헤헤.
덧붙임 2) 언제 한 번 봉하마을에 들러봐야겠다. 계실 때 가봤으면 좋았으련만.
덧붙임 3) 대학교 시절에 대한 얘기는 길다 싶긴 하지만 나름의 개인사 정리 성격도 있어서 적어봤다.
덧붙임 4) 늘 그렇듯 반말로 글을 쓸 때도, 경어로 쓸 때도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그리고, 글 계속 읽어본 분들은 알겠지만 나름 의식의 흐름 기법을 차용해서 글쓰기를 한다. 말하자면 글이 중구난방이란 얘기다. 이 점 역시 양해를. -_-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