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닝 포인트 ?

written on 09/06/25 17:37 | 7 살아가는 이야기 | by 상철
아침에는 마을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되도록이면 걸어서 출근하는 편이다. 그러면 대략 20분 정도는 걸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지하철-회사 구간의 경우 지하철이 신도림역 들어가기 전에 신호대기로 머무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서 가끔 급하게 걸어가야 할 때가 있다.

그런 날에는 빨리 걸어야 하는 건 기본이고 건너야 할 건널목에서 되도록 빨리 건너야 한다. 만약 제때 못 건너면 열심히 회사까지 뛰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

급할 때엔 전방의 신호등을 주시하면서 걷는데, 간혹 시간을 맞추기 위해 전방의 신호등이 바뀌면 좌우를 확인하고 횡단보도 훨씬 전에 건너곤 한다. 이건 타이밍이 중요하다. 건널 수 있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건널 수 있는 지점과 신호등을 확인하고 발빠르게 길을 건너는 기술(?)인데 말로 쓰니 복잡해보이네. 하하. 암튼 그 지점을 지나면 원하는 순간에 길을 건너지 못하는 안쓰러운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그럼 기다렸다 신호 바뀌면 열심히 뛰어야지 뭐. =.=

그래서 아침에 간혹 그런 생각이 스친다. 포인트를 잘 잡아야 한다는 생각. 운전할 때도 마찬가지다. 들어갈 포인트를 놓치면 다음 기회를 잡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아는 길은 이게 쉽다. 어디서 좌측으로 가고 우측으로 가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다들 알겠지만 이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다. 우리가 늘 맞서야 하는 상황은 '아는 길'에서가 아니다. 우리는 대부분 '모르는 길'에서 판단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늘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시기해질 가능성이 많으니까. '아는 길'만 다니면 참 좋겠지만 사는 게 그렇지 않다는 거 대부분 잘 알고 있지 않나.

난 보통 이런 선택에 그다지 능하지 않은 사람이다. 비교적 최근의 선택이라면 여자친구랑 위기 상황 때인데, 그 선택에는 매우 만족하고 있다. ^^* 살아가면서 늘 올바른 선택을 할 수는 없겠지만 되도록이면 합당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늘 주의를 기울이면서 살아야겠다. 헤헤.


근데 예전에도 비슷한 글 쓴 적 있는 것 같다. 데자뷰 느낌이 확 오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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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그동안 읽은 책 세 권 - 섬 문학 삼종 세트

written on 09/06/22 19:08 | 1 책 | by 상철




그동안 세 권의 책을 읽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라는 책인데, 이탈로 칼비노, 어슐러 K. 르 권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작가 삼인방에 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밑줄 긋는 남자』에서 주인공 심정이 이해되더라니까~

물론 조세희씨의 위치는 독보적이고. 나이가 어렸을 쩍 읽었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었을 때의 충격(?)때문에 내게 있어 이분 위치는 변할 수가 없다. 하하.

무의식적인, 의식의 흐름 기법에 의한 잡설은 그만하고 그동안 읽은 책 목록부터 읽은 순서대로 적어봐야겠다.



혼자 생각인데, 우연하게도 나름 절묘한 순서로 책을 읽은 것 같다. ^^; 『남쪽으로 튀어』 같은 경우는 가벼운 입문서랄까. 갠적으로 『공중 그네』보다 훨 재미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제목에 언급된 남쪽이 바로 '오키나와' 주변의 섬이라는 거다. 오키나와는 예전에 류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어쨌거나 저 세 권 중에는 처음 읽기에 제일 무난한 소설이 아닐까 싶다.

『順伊 삼촌』은 전에 쓴 글에도 언급되어 있으니 그다지 많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저 세 권의 책 중에서 제일 폐부를 찌르는 소설이다. 우리나라의 이야기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소설 자체도 순수소설이고 정면으로 제주도의 4.3사건을 다루었기 때문이겠지. 섬이란 지정학적 위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마냥 낭만적인 것은 아닌가보다.

『태양의 아이』라는 소설은 이를테면 동화라고 할 수 있는데, 동화 치고는 전체적으로 내용이 우울하다. 주인공이니 후짱의 성격이 워낙 밝고 강한데다가 주인공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동화 같은 분위기를 풍기긴 한다. 이 소설은 고베에 사는 오키나와 사람들에 대한 얘기인데 중반으로 가면 도대체 오키나와란 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이 나온다.

예전에 학교에 다닐 때 오키나와에 일이 있어서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당시 이런 말을 들었더랬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 본토 사람도 싫어하고 미국 사람들도 싫어해서 차라리 한국 사람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단 얘기.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그런지 대충 알게 됐다. 그리고 보니까 오키나와도 섬 한 군데만이 아니라 여러 섬이 존재하고 그 섬들 사이의 문제도 꽤 많았나보더라. 무지막지한 인두세 얘기도 나오고. 하긴 현기영의 소설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것 같더라.

제주도나, 오키나와 & 부속섬들 같이 아름다운 곳에 이다지도 슬픈 역사가 있다니 그저 망연할 따름이다. 저런 책이라도 읽으면서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근데 *****들이 하는 꼬라지들을 보니 울화통이 터진달까. 하하.


덧붙임) 얼마만의 오늘의 책인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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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 스스로를 시험하는 무대;

written on 09/06/19 13:53 | 2 밑줄 | by 상철

"아무튼요, 우에하라 씨도 언젠가는 노인이 되실 겁니다. 개미와 베짱이에 빗대자는 건 아니지만, 변변한 저축도 없이 노후를 맞이한다면 그건 정말 불안한 일이죠. 그러니까요, 노후를 위한 저축이라고 생각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쓸데없는 참견이야. 그런 건 각각 자기 책임으로 해두면 돼."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굶어 죽는 사람을 나라에서 그냥 손놓고 보고만 있겠습니까? 결국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밖에 없다고요."

"오만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군. 대체 어느 누가 도와달래?"

"인도주의는 국가의 구심력인 겁니다."

"시건방진 소리. 미국의 패권주의와 같은 발상이로군. 인도주의라는 미명 아래 지배층의 가치관을 온 세계에 이식하려고 하지."

"이야기를 비약시키지 마시고요."

"노상에서 죽을 자유를 빼앗겠다는 건가, 국가에서?" 아버지의 입에서 침이 튀었다.

"우에하라 씨는 노상에서 죽고 싶다는 말씀이세요?"

"응, 노상에서 죽고 싶고말고. 신주쿠 중앙공원에서 새벽녘에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음, 아주 멋진 최후야."

"그럼 그 시체는 누가 치웁니까? 우에하라 씨가 벌레보다 싫어하는 그 공무원들이 치워야겠죠? 한 사람의 막무가내식 행동 때문에 온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다고요."

"그게 바로 쓸데없는 참견이라는 거야. 시체야 까마귀가 쪼아 먹게 놔두면 돼."




아버지가 번쩍 눈을 치켜떴다. "그럼, 내가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소?"

"예..., 무엇이신지요?"

"우리 아들이 애국가를 부르지 않겠다고 하면, 선생, 어쩔 거요?"

"네?" 쳐들려던 허리가 그 자리에 멈췄다.

"학교 행사 때, 애국가 제창을 거부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거요." 미나미 선생님의 목이 꿀꺽하고 울렸다. 이마에는 땀이 배어나고 있었다.

"아, 그, 그러면 지로와 이야기를 해서 되도록 이해할 수 있도록..."

"무슨 이해?"

"일단 국기 게양과 애국가 제창은 학교법으로 제정된 것이니까요."

"학생들이 모두 다 일본인인 건 아니잖소?"

"저어, 우에하라 씨 댁은..."

"물론 일본사람이지. 하지만 국가라는 공동체에 참가하고 안하고는 개인의 자유요." 선생의 표정이 굳어졌다. 별 성가신 부모도 다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나라에 태어나면 무조건 선택의 여지도 없이 국민으로서의 의무와 권리가 생기다니, 그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소? 뭔가를 억지로 해야 한다는 건 지배를 맏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야. 사람은 지배당하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오?"



지로는 뭔가를 지그시 견뎌내고 있었다. 이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풀려나가는 건 아니다. 한 가족이라 해도 저마다 따로따로 살아가는 것이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든 선생님하고 상의해줘." 미나미 선생님은 자기 반 학생이 자신에게 사건을 감췄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몇 번이고 "선생님이 미덥지 않았어?"라며 서글픈 표정을 보였다.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미나미 선생님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린이의 세계에서 어른들은 하나같이 무력한 것이다. 필시 우리 아버지도.




"그런 일은 앞으로는 엄마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보고해달라고, 미나미 선생에게 말 좀 전해." 한숨이 터졌다. 아들의 위기에는 관심도 없는 걸까.

"싸울지 도망칠지, 네 뱃심을 딱 정해"라는 아버지. 지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이대로 끝날 리가 없잖아? 우에하라 지로, 인생의 중대한 기로에 섰구나."

"중대한 기로?"

"스스로를 시험하는 무대라는 얘기야." 아버지는 교정지에 눈을 떨군 채였다.




아버지는 다음 날 저녁 나절에 돌아왔다. 기분이 영 좋지 않은 얼굴로 부엌에 쓰윽 나타나더니 냉장고에서 차가운 보리차를 꺼내 컵에 따라서 단숨에 마셨다. 지로와 모모코와 아키라 아저씨, 셋이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정말 서글프다, 서글퍼.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인간들." 식탁에 자리를 잡더니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말을 꺼냈다.

"한마디로, 진정 싸워야 할 상대가 누구인지, 그 자들은 감도 못 잡고 있는 거야. 짙은 안개 속에서 계곡을 향해 돌을 던지는 식이야. 그러니 반응이 전혀 없지. 아무도 상대를 안 해줘. 그러니 제 영역을 지키는 데만 혈안이 되는 거야." 크게 기지개를 켜더니 목을 좌우로 두두둑 꺾었다.

"정말 한심한 자들이야. 이상을 실현하는 것보다 조직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고 있으니. 세상과 점점 괴리된다는 것도 모르고 그저 운동을 위한 운동에만 매달린다니까."




"혁명은 운동으로 안 일어나.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으로 일으키는 거라고!" 아버지가 부르짖었다. 점점 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집단은 어차피 집단이라고. 부르주아지도 프롤레타리아도 집단이 되면 다 똑같아.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못 지켜서 안달이지!"

"이봐, 우에하라, 진정해!" 형사가 외쳤다.

"개인 단위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만이 참된 행복과 자유를 손에 넣는 거얏!"




"우리, 오키나와의 이리오모테 섬으로 이사하기로 했어." 모모코가 젓가락 든 손을 멈췄다. 지로는 입에 밥을 가득 떠 넣은 채 씹는 것을 멈췄다.

"너희에게는 좋은 인생 경험이 될 거야. 대학에 가거나 회사원이 되는 데는 약간 불리할지도 모르지만, 누구나 다 걸어가는 그런 인생에 그다지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도쿄에서의 생활은 이쯤에서 접으려고 해." 곧바로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우선 입 안의 밥부터 삼키기로 했다.

"물론 너희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니까 자립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시점에는 얼마든지 독립해도 좋아. 하지만 열다섯 살까지는 아버지랑 엄마랑 함께 살자. 그래서 말인데, 지금 친구들과는 일단 이별해야겠다."

... 중략

"너희가 학교에서 배우는 거, 실은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야. 공부하는 내용도 그렇고 집단생활의 규칙 같은 것도 그래. 정해진 통학로로만 다녀야 하다니, 그런 건 명백하게 아무 의미도 없는 규칙이잖니? 나라에서는 국민을, 어른은 어린애들을 그저 편리하게 관리하겠다는 것뿐이야." 어머니까지 아버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하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부부가 되었을 것이다.




분명 아버지는 우리가 학교에 가는 것을 알아도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따가 학교에서 돌아와도 특별히 그 얘기를 꺼내거나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정은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방해도 하지 않는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표 나지 않게 처리해나가는 건 인간 관계의 지혜이다.




"정말 남쪽 섬으로 오니까 갖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 누나가 유쾌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면 정치경제도, 국가도 필요 없겠지?"

"후아, 너무 어려운 얘기야." 모모코가 얼굴을 찡그렸다.

"혼자 살더라도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들면 정치경제가 발생해.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걸 생각하지 않으면 정치가도 자본가도 필요 없는 거야. 돈이 없어도 모두가 콘스턴트하게 가난을 즐기면 얼마든지 행복하지 않을까?"

"엄마 말은 더 못 알아듣겠어."

"모모코는 아직도 도쿄로 돌아가고 싶니?" 어머니가 물었다.

"글쎄. 내 마음은 복잡미묘." 모모코만 빼고 셋이서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이나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지로는 어깨에서 스르르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어깨를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이제껏 잔뜩 힘이 들어갔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해방감은 대체 무엇일까.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내쉰 것 중에서 가장 큰 한숨을 후우 내쉬었다.

일어나서 양팔을 활짝 펼쳤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았다. 기분좋게 보였는지 모모코가 따라했다. "나도!"라며 누나도 일어섰다. 어머니도 그대로 흉내를 냈다. 네 사람이 연처럼 바람에 펄럭였다.

"뭐하냐, 너희들. 공기 저항이 불어나잖아!" 조타석에서 아버지가 소리쳤다.

"아버지, 파이파티로마에 가도 좋아!" 누가가 말했다. "아버지도 가고 싶지?"

"흥, 너희에게는 과분한 곳이야." 아버지는 코웃음을 쳤다.

새까맣게 그을린 아버지는 타고난 바닷사람으로 보였다. 이미 도쿄 냄새는 어디에도 없었다. 돌아와야 할 장소에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로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섬사람들도 다 반대하는데, 케이티도 이제 포기하지 않을까?" 희망을 담은 질문이었다.

아버지가 허공을 바라보며 할 말을 찾고 있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지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너는 아버지 따라할 거 없어. 그냥 네 생각대로 살아가면 돼. 아버지 뱃속에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벌레가 있어서 그게 날뛰기 시작하면 비위짱이 틀어져서 내가 나가 아니게 돼. 한마디로 바보야, 바보."




"어느 쪽이 옳은지, 선생님도 섬사람들도 모릅니다. 호텔 건설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단지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초등학생인 여러분의 본분은 공부라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문제에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어른에게는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거기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만일 의문을 품었거나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잊지 말고 가슴속에 간직해주세요. 그리고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의 머리로 판단하여 정의의편에 서는 사람이 되어주세요..."

지로는 큰 격려를 받은 것 같았다. 자신 역시 아버지만이 정의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에게도 지배받으려 하지 않고 혼자 국가에서 튀어나와 살아가겠다니, 그건 너무 자기 멋대로인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국가가 정의라도도 할 수 없었다. 튀어나갈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배자의 생각이었다.




오늘의 농성 소동은 틀림없이 큰 뉴스가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미움까지야 사지 않겠지만 동정도 받지 못했을 것 같다. 지로는 어디까지나 냉담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경찰과 기업에 창끝을 들이댄 사람을 통쾌하다며 재미있어 하면서도, 그것을 막상 내 일처럼 생각해줄 사람은 없다. 텔레비전을 지켜본 어른들은 단 한 번도 싸운 일이 없고 앞으로도 싸울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대항하고 투쟁하는 사람을 안전한 장소에서 구경하고 그럴싸한 얼굴로 논평할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냉소를 던지리라. 그것이 바로 아버지를 제외한 대다수의 어른들이었다.




누나는 저항할 마음이 사라졌는지,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요코, 그런 얼굴 하지 마라. 아버지와 엄마는 인간으로서 잘못된 일은 하지 않았어." 어머니가 배에서 부두로 내려와 누나 앞에 앉아 말했다. "남의 것을 훔치지 않는다, 속이지 않는다, 질투하지 않는다, 위세부리지 않는다, 악에 가담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을 나름대로 지키면서 살아왔어. 단 한 가지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 있다면 그저 이 세상과 맞지 않았던 것 뿐이잖니?"

"그게 가장 큰 문제 아냐?"

"아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주 작고 작아. 이 사회는 새로운 역사도 만들지 않고 사람을 구원해주지도 않아. 정의도 아니고 기준도 아니야. 사회란 건 싸우지 않는 사람들을 위안해줄 뿐이야."

"여기서 그런 얘기 해봤자. 글쎄..."

"얘, 일어서봐." 어머니가 누나를 일으켜 끌어안았다. 귓전에 무언가 속삭였다.

"응. 나도 이 세상에 태어나서 좋았어." 누나의 대답만 들렸다.




"지로, 전에도 말했지만 아버지를 따라하지 마라. 아버지는 약간 극단적이거든. 하지만 비겁한 어른은 되지 마. 제 이익으로만 살아가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말라고."

"응. 알았어..."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

"그거, 엄마 얘기?"




어느새 구름은 사라지고 비도 멎었다. 바람이 잦아들고 물결도 잔잔해졌다. 달빛 아래 너른 바다가 찰랑찰랑 흔들렸다. 바다는 캄캄했지만 생물처럼 번들거렸다. 군데군데 안개가 서려있었다. 그 아름다움에 문득 현실이 아닌 듯한 착각이 몰려왔다. 이건 길고 긴 꿈이 아닐까. 눈을 뜨면 우리 모두 도쿄의 나카노 집에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머리를 스쳤다.

나는 지금 꿈과 현실 중 어느 쪽에 있는 걸까. 도쿄의 현실과 남쪽 섬의 꿈. 뜨뜻한 밤기운에 감싸여 지로는 의식의 반절이 공상으로 내달렸다. 이 이별이 전혀 슬프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홉 살의 모모코조차 마법에 걸린 소녀처럼 부모님과의 이별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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