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에 대한 짧은 잡담

도리스 레싱 여사의 책을 읽고 있다. 민음사에서 출판된 『다섯째 아이』. 비교적 최근 작품이다. 레싱 여사 책은 집에 몇 권인가 있는데, 아직 펼쳐보지 않다가 노벨상 소식이 들리고 난 후 이제야 읽게 됐다. (노벨상 수상한지 1년이 넘은 파묵 씨 소설도 아직 한 개도 못 읽었는데.. ㅠ.ㅠ 사실 레싱보다 파묵 씨 소설이 더 기대되는데 말이지)

간만에 무게감 있는 작품을 읽으니 왠지 마음이 뿌듯하다. 묵직한 느낌에 비해서 읽는 속도감은 빠른 편이다. 책도 얇은 편이니 이번 주 내로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를 많이 낳아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는 부부가 전혀 뜻밖의 아이 하나를 낳으면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지금까지 읽은 내용으로만 본다면 그들이 낳은 다섯째 아이는 별나라에서 뚝 떨어진 이질적인 존재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부모들의 이기심의 복합체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 부부의 능력으로 집을 산 것이 아니었으며, 여러 명의 아이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던 삶을 살았던 친아버지인 제임스로부터 도움을 받아 능력 밖의 집을 산다. 계획대로라면 최소한 2년 동안 아이를 낳지 않고 돈을 벌어야 했던 해리엇은 데이비드로 인해 임신을 하게 되고, 그들을 도우기 위해 해리엇의 엄마인 도로시가 희생된다. 그들은 도로시의 도움에 힘입어 계속해서 다섯째 아이까지 낳게 된다. 그렇기에 도로시는 다른 딸인 사라의 아이를 돌볼 수가 없게 된다. (그 아이는 다운증후군에 걸려있었다)

읽고 있노라면 부모인 데이비드와 해리엇의 무책임하게 자신들의 행복만 추구하는 것에 대해 일정 부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결국 그들은 다른 이의 희생이라는 버팀목으로 자기들의 이상을 추구하고 있으니까.

그들의 부모들이나 형제자매들 – 최소한 도로시와 제임스, 사라 – 에게는 데이비드와 해리엇이 ‘다섯째 아이’의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2007/12/18 씀

이제 읽은 지가 좀 되었기 때문에 달리 붙일 말은 그다지 없을 것 같다. 다만 다섯째 아이를 낳은 여인과 그녀의 모성애에 대한 폭력적인 시선은 한 번 반추해봐야 할 것 같다.

분명히 두 사람의 아이이자 자기들의 친척, 자기들의 손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해리엇 혼자 그 불행을 잉태한 것 같은 분위기가 흐른다. 그리고 결국 다섯째 아이를 버리지 못하는 해리엇에 대해 데이비드마저 등을 돌린다.

사회는 발전하고 있지만 여성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폭력은 끊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자칭/타칭 선진국이라는 영국에서도 저런데 말이다. (물론 현재의 영국사회 아니라 약간 지난 영국사회이긴 하지만)

다섯째 아이에 의해서 붕괴된 이상적인(?) 가정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들의 문제는 결혼과 동시에 잉태된 것이 아닐까. 단지 다섯째 아이라는 구체적인 존재로 인해 붕괴되었을 뿐;

- 2008/02/05 덧붙임

2007년 하반기 독서

01. 오주석, 『한국의 미 특강』 *
02. 모르데카이 로쉬왈트, 『핵폭풍의 날』
03. 히가시노 게이고, 『백야행』 상/중/하
04. 김만중, 『구운몽』
05. 한스 벰만, 『돌과 피리』 1/2/3
06. 아서 클라크,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07. 다니엘 페낙, 『독재자와 해먹』
08. 조너선 캐럴, 『벌집에게 키스하기』
09. 로버트 A. 하인라인,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10. 스티븐 킹, 『미스터리 환상특급』 1
11. 츠츠이 야츠다카, 『파프리카』
12. 호시 신이치, 『어떤 이의 악몽』
13. 수잔나 타마로, 『마법의 공원』
14. 사마다 마사히코, 『나는 모조인간』
15. 필립 K. 딕, 『페이첵』 *
16. 콜린 덱스터,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
17. 필립 폴먼, 『황금나침반』
18. 로베르트 반 홀릭, 『종소리를 삼킨 여자』
19.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20. 시마다 소지, 『점성술 살인사건』

20권의 책을 읽었으니 한달에 대략 세 권 정도의 책을 읽었나보다. 그림 읽기에 대한 교양을 일깨워준 『한국의 미 특강』도 괜찮았고, 기대하지 않았던 『페이첵』도 의외로 괜찮았다. 『한국의 미 특강』은 교양강좌 어투 그대로 인데다가 초보자 대상이라 읽기도 편했다.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좀 길러보자는 생각이 물씬;

단편보다는 장편을 선호하는 편이며 필릭 딕의 호평받은 다른 단편집도 그닥 인상적이지 않아서 『페이첵』이란 책에 대해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기대보다는 훨씬 좋았다. 역시 타인의 취향이라니까. 과학소설적인 요소는 많이 사라졌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류의 단편들이 많았던 것 같다.

아서 클라크씨의 책은 역시나 불편하다. 아시모프씨에 비해서 말한다면 클라크씨의 책은 아무래도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축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클라크씨나 아시모프씨나 글은 정말 흡입력 있게 잘 쓰는데, 클라크씨의 책을 읽다보면 자꾸 불편해진다. 불편하긴 하지만 클라크씨 쪽이 좀 더 현실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독재자와 해먹』은 처음 읽어보는 페낙의 책인데, 기대를 너무해서인지 약간 실망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재미있어지더라. 올해는 말로센 시리즈를 꼭 읽어봐야겠다!

『황금나침반』은 종교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참신한 소재를 가지고 있으나 너무 빨리 읽게 만드는 구조라 별 생각없이 읽게 된다는; 그리고 리라라는 소녀가 마치 무협지 주인공인 듯한 느낌이다. 그 소녀 근처에 있는 인물들은 별 이유없이 그녀를 지켜주고 따르게 된다. (사실 소설에서는 별 이유가 있다며 신빙성 없는 근거를 제시하지만) 하지만 전체 이야기의 1/3 분량이기에 끝까지 읽어봐야겠지. 영화는 계속 나올 수 있을까? =.=

간만에 읽은 문학적 중량감이 느껴지는 『다섯째 아이』에 대한 얘기는 조만간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을 듯하다.

호시 신이치의 단편 모음집도 나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리즈로 많이 출판되어 있으므로 여행갈 때 하나 사서 들고 가면 좋을 것 같다. 각 단편들의 분량이 매우 짧으니까 읽는 부담도 주지 않고 말이지. ^^;

올해 마지막으로 읽은 『점성술 살인사건』이라는 추리소설은.. 역시 난 트릭이 중심이 되는 추리소설에는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줬다. 아무래도 난 탐구심이나 호기심이 부족한 것 같다. 하하.

반 홀릭의 소설을 보며, 우리나라에도 찾아보면 많은 이야기 거리가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올 하반기에 읽은 유일한 국내소설은 『구운몽』 밖에 없다. 우리나라 작품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 『구운몽』에 대해 간단히 평하자면 주인공 성진이가 너무 찌질하더라는 말 밖에. 정신을 많이 차려야 하는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꿈을 꾸고 난 후 깨달음을 얻었을 지 좀 의심스럽기도 하고.

정리하자면 2007년 하반기 역시 1) 소설이 중심되는 편향적인 독서를 했으며, 2) 국내소설을 별로 읽지 않았고, 3) 권수에 집착한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위 사항에 대해서는 늘 반성(?)하도록 하고, 올해는 누구의 소설을 하나 정도는 읽어야겠다 정도의 최소한의 계획은 세우며 읽어야겠다. 이를테면 겐자부로, 보르헤스 같은.

간만에 서점 나들이 ~

팀 파워즈, 『아누비스의 문』 1/2 (웅진)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7043X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70448

웅진에서 기획한 SF/판타지 총서 중 세 번째로 출판된 아누비스의 문입니다. 1차분은 판타지 쪽이 많고, 2차분은 SF 쪽이 많을 거라고 하네요. 웅진은 ’20세기 일문학의 발견’과 ‘포스트모더니즘 걸작선집’으로 인해 익히 이름이 알려져있습니다. 저 선집 구하기 위해 불철주야 헌책방을 뒤지시는 분들이 많으셨을테고, 지금도 뒤지시는 분들이 많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암튼 그런 곳에서 기획하는 시리즈이기에 꽤나 기대가 되네요. 물론 돈이 부족해서 나오는 족족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요.

참고자료: http://happysf.net/zeroboard/zboard.php?id=reader&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353

O.T. 넬슨, 『내일은 도시를 하나 세울까 해』 (뜨인돌)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071850

신간을 둘러 보다가 제목이 마음에 들기에 소개합니다. 초중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인 것 같고요, 가까운 미래에 어른들이 모두 사라지고 어린 아이들만 도시에 남았다고 하는군요! 줄거리를 보니 『15소년 표류기』나 『파리대왕』이 생각납니다. 역시나 책 소개에도 두 책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둘 중에는 『파리대왕』에 더 가깝다는 설명을 읽은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이 나는 건 아닙니다. ^^;

조너선 캐럴, 『나무바다 건너기』 (북스피어)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931286

조너선 캐럴의 크레인스뷰 3부작 중 『벌집에 키스하기』에 이어 2번째로 번역된 작품입니다. 전작은 미스터리 소설의 성격이 강하고, 이번 작품은 환타지 소설의 성격이 강하다고 합니다. 이 작가의 책은 『벌집에 키스하기』와 『웃음의 나라』 두 권을 읽어봤는데 발상 자체가 매우 신선합니다. 그리고 두 작품 모두 글쓰는 사람이 주인공이라 글쓰는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 있어서 나름 만족했습니다. ^^; 후반부에 가서 힘이 좀 딸리지 않나 싶은데, 어쨌거나 크레인스뷰 3부작은 모두 읽어볼 생각입니다.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위험천만 왕국 이야기』 (씨앗을뿌리는사람)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371164

톨킨의 책입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인 것 같습니다만, 『반지의 제왕』를 읽고 톨킨에 매료되신 분들이라면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이겠지요. ^^

김애란, 『침이 고인다』 (문학과지성)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8049
정한아, 『달의 바다』 (문학동네)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3645
정이현, 『오늘의 거짓말』 (문학과지성)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7980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문학동네)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398X

그리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국내작가들의 소설들입니다. 『달려라, 아비』의 김애란은 <나는 편의점에 간다>라는 단편 하나만으로도 개인적으로 기대가 만빵인 작가입니다. 이번에도 단편집을 냈네요. 저번에는 창비에서, 이번에는 문지에서 책을 내는군요. 몹시 부럽습니다. ㅠ.ㅠ

그리고 제 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인 『달의 바다』입니다. 전 문학동네작가상에 대해 묘한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나 『새의 선물』같은 작품들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올해 읽었던 『캐비닛』도 매우 만족스러웠고요.

정이현과 김연수는 언젠가 한 번 읽어봐야 할 작가들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괴이한 부채감 때문에 언급을 하고 넘어갑니다. ^^;

류형, 『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 (비채)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036442

노신 이후 세대의 중국 작가 소설을 읽은 기억이 없습니다. 아. 쓰다보니 위화의 소설들을 읽었던 게 생각 나는; 『더불어 사람아 아 사람아』도; 암튼 전반적으로 중국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 겸사겸사 소개합니다.

뮈리엘 바르베리, 『고슴도치의 우아함』 (아르테)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958480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차가운 피부』 (들녘)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5275795

두 작품 모두 신간 안내에서 책을 훓어보다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소개하는 작품입니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이 조금 더 마음에 드는 제목;

『차가운 피부』는 『로빈슨 크루소』와 영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을 섞어놓은 듯하다, 라는 평이 실려있네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프랑스 아마존 30주 연속 1위를 차지한 작품이라네요. 작가는 이 책이 성공하자 철학교사직을 그만두고 장기 아시아 여행을 준비중이랍니다. 역시 부럽네요. 하하.

도리스 레싱, 『황금노트북』 1/2/3 (뿔)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72661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72734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72742
리차드 브라우티건, 『워터멜론 슈가에서』 (비채)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036485

절판되었던 책 두 권이 나왔습니다. 『황금노트북』은 이번 연도 노벨상 수장작가인 도리스 레싱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노벨상 타기 이전부터 출간될 예정이던 책이랍니다. 역자도 바뀌었고, 2권이었던 책이 3권으로 늘어났네요. 『워터멜론 슈가에서』 역시 다시 출판됐군요. ^^ 역자는 그대로입니다. 얼마전에 『미국의 송어낚시』를 출판했던 비채에서 『워터멜론 슈가에서』까지 재간해주네요. 구하시던 분들 반가우시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