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말이나 행동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떤 사람을 통해 전해지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말이 될 수도, 행동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 회수는 전하는 사람의 주관적 시선이겠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이란 영화가 이런 현상을 잘 설명하고 있지 않나 싶다. 하나에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에 대해 네 명의 다른 시선들이 묘사된다고 하던가. 아쿠타가와 류노스테가 영화 <라쇼몽>의 원작소설을 쓴 작가인데, 원작소설도 그랬던 것 같다. 워낙 오래전에 읽어서인지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네.

문제는 내가 전달받은 탱자가 원래 귤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확인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뭐였는지 확인을 해야 회수한테 왜 귤이 아니라 탱자를 줬는지 따지거나, 귤은 먹는 사람이 직접 회수를 건너 먹어야겠다고 다짐을 하거나 할 거 아닌가 싶다.

귤을 ‘내가 알고자 하는 실체, 혹은 진실’이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주는 탱자와 금귤 같은 같은 걸로 실체에 접근하기는 너무 힘들다. 진실을 모름에도 불구하고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은 더더욱 힘들고.

하지만 인간의 일들이라는 것도 다 그렇지 않던가. 실체를 파악할 시간은 부족하지만 뭔가 입장의 정리라는 건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들의 연속.

하긴 나 역시 수많은 탱자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 역시 자명한 사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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